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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문화재

<한국누정292> 순창 구암정(龜岩亭) 231107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1028 건립시기 : 대한제국 광무 5년(1901)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7일, 맑음 구암정(龜岩亭)은 조선 성종 대의 순창 출신 학자인 구암 양배(龜岩 楊培)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1년(광무 5)에 지은 정자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연산군 때의 사화로 선비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동생인 양돈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구암정이 있는 만수탄 천변에는 원래 양배와 양돈이 정자를 짓고, 낚시를 즐기던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를 일러 배암 또는 돈암이라 부르며, 합쳐서 형제암이라고도 한다. 정조 12년(1788)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을 세워 양배를 비롯한 선현들을 추모하였다. .. 더보기
<한국누정291> 순창 어은정(漁隱亭) 231107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07-32 (평남리) 건립시기 : 조선 명종 22년(1567), 1919년 개축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7일, 맑음 어은정(漁隱亭)은 조선시대 학자 어은 양사형(漁隱 楊士衡, 1547~1599)이 명종 22년(1567)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영하정이라 이름 지었다가, 후손들이 어은정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어은'은 강에서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사형은 선조 21년(1588)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광군수,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이 되었다. 죽은 뒤에는 승정원도승지에 봉해졌으며, 순창의 화산서원에 신주를 모시고 있다.. 더보기
<한국누정290> 순창 귀래정(歸來亭) 231107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8-1 건립시기 : 조선 세조 2년(1456), 1974년 개축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7일, 맑음 귀래정(歸來亭)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1,456년(세조 2)경에 지은 정자이다. 귀래정이라는 이름은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당시 가깝게 교유하였던 서거정이 지어 준 것인데 신말주는 귀래정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신말주는 세조 때의 명신인 신숙주의 막냇동생이다. 그는 단종 2년(1454)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세조가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부인의 고향인 .. 더보기
<한국누정289> 순창 낙덕정(樂德亭) 231107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산49-1 건립시기 : 조선 고종 37년(1900)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7일, 맑음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추령천의 상류에 낙덕암이라는 작은 구릉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 인종 때의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1545년 인종이 죽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부인의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훈몽재라는 초당을 짓고 제자를 양성하면서 시와 술을 벗삼아 유유자적 세월을 보내던 곳이다. 그는 물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는데, 후일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날 곳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낙덕암 위에 있는 정자는 고종 37년(1900)에 김인후의 후손 경암 김노수(敬菴 金魯洙) 등이 선조.. 더보기
<한국누정288> 순창 영광정(迎狂亭) 231107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367 건립시기 : 1921년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7일, 흐림 영광정(迎狂亭)은 이 지방출신 독립운동가인 금옹 김원중(錦翁 金源中)이 7명의 동지들과 뜻을 합하여 1921년에 쌍치면 둔전리 추령천 옆 기용암 위에 지은 정자이다. 한일합방으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김원중은 애국동지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의병투쟁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모임을 가질 때, 마치 미친 사람행세를 하여 왜인들의 감시를 피했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을 영광이라 하였다. 정자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처마 끝에는 태극팔괘를 새겨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이들의 굳센 의지를 담았다. 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