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누정/경상남도

<한국누정253> 함양 상림공원 사운정(思雲亭) 230515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팔봉산길 49, 상림공원 내
건립시기 : 고종 46년(1906), 1998년 중건
답사일자 : 2023년 5월 15일,  맑음
 
 
 
사운정(思雲亭)은 함양읍 상림공원 안에 있다. 경남 유림과 정3품 박정규, 김득창이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908(?))을 추모하기 위하여 1906년(고종 46) 건립하여 처음에는 모현정이라 불렀으나, 후에 고운 최치원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사운정이라 불렀다.
 
 

 
고운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868년(신라 경문왕 8)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하였다. 신라 말 삼최(三崔)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사람이다.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관등을 받았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행방불명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가야산의 해인사로 들어갔다고 하고, 민담에서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도 한다. 908년(효공왕 12)까지 생존해 있었음은 확실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에 추증되고 현종 14년에 문창후라는 시호가 추증되었으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경주의 서악서원, 태인 무성서원, 영평 고운영당, 함양 백연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aprilmin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