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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

<국내성지022> '잊은터'와 '두둘기', 죽산순교성지 181012 죽산 순교성지는 천주교의 4대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봉헌한 곳이다. 충청, 전라, 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에는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일찍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의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이곳에서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곤 했다. 현재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하여도 스물다섯 분이나 되는데, 이렇게 밝혀진 순교자 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현 '죽산성지'인 사형장으로 끌려와 순교의 깃발을 올렸던 곳이다. 죽산 성지는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해서 '이진터'라 불렸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이진터'가 병인박해 때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란 이름으로.. 더보기
<국내성지021> 매괴 성모 순례지, 감곡성당 181012 감곡 성당은 1896년 10월 7일 '장호원 성당'이란 명칭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매괴(묵주 기도)의 성모이다. 초대 주임 임 가밀로 신부는 1930년 현재의 고딕 양식으로 된 세 번째 성당을 건축하고, 성모님께 약속한 대로 '매괴의 성모'를 주보로 삼고 뮈텔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청주교구는 2006년 10월 7일 감곡 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했다. 성모 순례지 지정은 1991년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에 이어 한국 교회에서 두 번째이다. 장봉훈 주교는 성모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은총의 표징들로 첫째, 매괴 성모 광장이 일제 강점기 중 신사 참배터로 지정되었으나 천둥과 소나기, 벼락으로 일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점과, 둘째,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공산당원들이 .. 더보기
<국내성지020> 정약종 복자의 성가정 성지, 마재성지 181008 마재 성지는 거룩한 부르심의 땅이자 성가정 성지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주역들의 생활 터전이며 가족 모두가 순교하고 시복 시성의 영예를 얻게 된 정약종 일가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마재는 세속적으로는 다산 정약용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도 소중한 장소로, 교회 창립의 주역으로 천진암 강학회에 참여하였던 정씨 형제들(약현,약전,약종,약용)이 살았던 거룩한 부르심의 땅이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에 의해 조직된 '명도회'의 첫 회장을 지내고,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저술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고향이다. 그리고 정약종의 부인 유조이 체칠리아 성녀, 장남 정철상 가롤로 복자, 차남 정하상 바오로 성인, 딸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등 일가 5명이 모두 .. 더보기
<국내성지019>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성당 180520 계산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 성당을 봉헌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계산 주교좌성당의 전신이다. 그 뒤 이 한옥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 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는데 1911년에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부분적인 보수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교좌성당답게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는데 신학문 교육 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며 후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고, 1909년에는 가톨릭 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는 명도회를 발족해 교회 주보를.. 더보기
<국내성지018> 신앙의 길목이자 교차로, 연풍순교성지 180519 연풍순교성지는 초기 교회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뿌리 깊은 교우촌으로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 선조들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칼레 강 니콜라오 신부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다. 특히 최 신부는1849년부터 12년간 새재를 넘나들며 이 지역에 신앙의 꽃을 피우다가 선종하여 새재의 연봉인 배론 신학당 뒷산에 묻혔다. 그 결과 연풍은 각처의 신앙을 이어 주는 교차로가 되었으며,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 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된다.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석두 루카(1813~1866년) 성인의 고향이고, 연풍 성지는 성인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성인은 아내와 동정 부.. 더보기
<국내성지017> 도리 신부 순교비, 손골성지 170714 손골성지 순례 (2017년 7월 14일) 손골성지는 광교산 골짜기에 있는 천주교성지이다. 손골은 당초 천주교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사는 교우촌이었는데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이 교우촌에 숨어들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고 전교를 하던 유적지로 외부에 알려졌다. 손골이 성지로 개발된 데에는 성 도리 헨리코 신부와 관련이 있다. 도리 신부는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손골에서 선교활동중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는데 도리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딸몽 성당에서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그 부모가 사용하던 멧돌로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 생가에 모시고 다른 하나를 손골로 보내왔다. 이 십자가를 받은 손골에서 도리신부순교비를 세우고 그 위에 딸몽에서 보내온 돌 십자.. 더보기
<국내성지016> 무명 순교자들의 터전, 해미순교성지 141012 당산동성당 전신자 해미성지 순례 (2014년 10월 12일) 해미성지는 이름 모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터전이다. 이름이 기록된 순교자는 132명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들 가운데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해미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이유는 이곳이 서해안 방어를 위해 마련한 해미 읍성과 군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의 처형을 군인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충청도 서북부 내포 지방에서 잡힌 신자들 중 일부는 홍주와 공주로, 일부는 해미로 보내졌다. 신자들은 신앙을 버리면 목숨을 건질수 있었으나 한 번 알아 모신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할 수 없다하여 순교에 이르렀다. 해미에는 조선 시.. 더보기
<국내성지015> 최경환 성인의 교우촌, 수리산성지 180310 수리산은 최양업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신유박해 이후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와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본디 충청도 청양 다락골 사람이었던 최경환 성인은 장남 최양업이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떠난 뒤 고발을 빙자한 협잡꾼들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유랑길을 나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이곳 수리산에 정착하게 된다. 수리산은 예로부터 담배를 재배해 왔다 해서 '담배골' 또는 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다고 해서 '병목골'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박해 시대 때 외부와 단절된 천혜의 피난처 구실을 해 왔던 곳이다. 최경환 성인은 1838년 수리산에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면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을 모아 교우촌을 가꾸면서 열열한 선교활동을 펴던 중 183..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