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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

<국내성지030> 해상 경비 군영이자 천주교 신자 처형지, 진무영 순교성지 181115 진무영(鎭武營)은 조선 시대에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軍營)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를 촉발시킨 서울 애오개('아현'의 옛 지명) 회장 최인서 요한, 장주기 성인의 조카 장치선, 박순집의 형 박서방, 조서방 등이 이곳 진무영에서 순교하였다. 진무영은 1700년(숙종 26년) 강화부에 그 본영을 설치하고, 1779년(정조 3년) 통어영을 병합하였다가 1789년(정조 13년) 다시 분리하였다. 특히 1866년의 병인양요 이후, 외국 선박의 출입이 빈번하여 쇄국 정책을 쓴 당시로서는 수도의 관문을 지키는 국방상 중요한 군영이었다. 강화가 천주교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겪으면서였다. 그동안 천주교 신앙 유입의 통로는 육로뿐이었다... 더보기
<국내성지029> 침묵의 순례지,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181115 한국 천주교회는 적게는 1만 명, 많게는 3만 명의 순교자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천 명도 채 안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2001년 당시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는 강화도에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조성하여, 이를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명 순교자에게 봉헌하였다. 또한 이곳은 인천교구가 2004년에 설립한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과 인접하여 있어 젊은이들과 자연과 순교자들이 어우러지는 '침묵의 순례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양동산에는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무명 순교자들의 흔적을 묵상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무명 순교자의 길이 있고, 묵주 연못, 무명 순교자상, 십자가의 길, 일만 위 순교자 현양탑,.. 더보기
<국내성지028>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 양근성지 181107 양근 성지는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한강 수표교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에게, 또 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 대감마을 또는 한감개에 살고 있던 권철신에게 세례를 베푼 뒤 천주교 신앙생활(아침 기도, 저녁 기도 등)을 실천한 곳이다. 또한 양근 성지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로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으며, 지도자급 평신도들이 가성직 제도(또는 모방 성직 제도)로 성직자 역할을 하면서 미사와 견진성사를 2년간 집전하던 곳이다. 그래서 양근 성지를 천주교회의 요람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한편 이곳 양근 성지는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와 쌍벽을 이루는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동정 부부와 20여 명의 순교자들이 태어나거나, 신앙을 증언하다 체포되어 순교한 곳이다. 한.. 더보기
<국내성지027> 한국 네번째 강원도 첫번째 성당, 풍수원성당 181107 1888년 6월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풍수원 성당은 1910년에 봉헌식을 가졌으며, 한국인 신부(정규하 아우구스티노)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으로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자재를 스스로 조달하여 세웠다. 성전은 1982년에 강원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구 사제관은 2005년에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풍수원 일대는 오래된 교우촌으로 그 시작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때, 박해를 피해 피난처를 찾던 신태보 베드로가 신자 40여 명과 함께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한 것에 기인한다. 이 후 박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교우들이 모여 큰 촌락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이어 왔으며, 80여 년간 목자 없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오다가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더보기
<국내성지026>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성지 181028 솔뫼 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1836년 김대건 신부의 신학생 추천서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이름이다. 김대건은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 중국 마카오에서 공부를 한 뒤 1845년 24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려고 솔뫼에는 기와집 생가(대건당)가 복원되어 있고,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은 솔뫼에서 대를 이어 살던 선조들의 모범으로 형성되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는 솔뫼에서 신앙을 받아들여 살다가 1814년 해미에서 순교하였고,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는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 더보기
<국내성지025> 강원도 세번째 성당, 용소막성당 181025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1904년에 설립되었다. 용소막에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병인박해 무렵이었는데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지역에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용소막에서 멀지 않은 황둔, 오미, 용소막으로 이주하여 공소를 설립하면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915년 가을에 완공된 아담한 벽돌 양옥 성당인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당시의 성당 건축 양식이었던 로마네스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성당 앞부분에 종탑이 나와 있는 것이 다른 성당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용소막 성당에는 용소막에서 태어나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긴 원주교구 소속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삶과 공.. 더보기
<국내성지024>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 묘재성지 181025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려고 이사한 곳으로 남종삼 성인이 살던 곳이다. 남종삼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천주교 입교 등에서 아버지 남상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래 생부는 남원교이나 종숙부인 남상교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갔다. 남종삼은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들을 통해 서구 열강과 동맹을 맺으면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대원군은 남종삼의 상소문을 받아들였으나 주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상황이 바뀌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남종삼은 이곳에 피신하였다가 붙잡혀 순교하였다. 남상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남종삼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 뒤 체포되어 공.. 더보기
<국내성지023> 황사영 백서,최양업신부 묘소,최초의 신학교, 배론성지 181025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신유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조선 교회의 박해 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적은 곳이다. 황사영이 순교하고 관련된 신자들이 모두 처형되면서 배론 교우촌도 파괴되었다. 1855년 초 장주기 요셉 성인의 집에 설립된 성요셉신학교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서양 학문을 교육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문에 장주기와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 신부가 순교하자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사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