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특별시

백일홍, 서울 양재천 200718 서울 개포동 남부혈액원 앞 양재천에 꽤 넓은 면적의 백일홍 꽃밭이 조성되어 지금 만개라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이 들락날락하지만 내일부터 며칠간 장대비가 내린다니 일단 아내와 카메라를 메고 갔다. 토요일이라서 남부혈액원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밀미리다리 위로 가서 위치 파악을 한다. 서쪽 편 양재천 약 200m 지점에 붉은 빛깔의 꽃밭이 보인다. 밀미리 다리((밀미리는 마을 이름) 아래로 내려가니 활짝 핀 참나리가 먼저 반긴다.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듯한 억새숲 길을 따라 백일홍 꽃밭으로 간다. 오래된 왕버들 바람벽 아래 길게 조성된 꽃밭에 활짝 핀 백일홍이 한가득이다. 여긴 유독 노란색 백일홍꽃이 많다. 꽃밭에 꿀따러 온 나비와 벌들이 와글와글한다. 꽃들도 지금 한창 피어나고 있어.. 더보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노란망태말뚝버섯 200715 노란망태말뚝버섯을 만나러 대모산으로 갔다. 2016년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이 적기라 판단하고, 마침 어제 비가 오고 오늘은 맑다. 대모산 특유의 붉은색이 강한 노란망태말뚝버섯이 무더기로 올라오는 상상을 하며 망태버섯의 일생을 동영상으로 담을 준비까지 완료했다. 요즘 부쩍 게을러진 몸을 일으켜 새벽 5시 반에 출발하여 6시에 수서역 북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서 텅텅 빈 공영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서울둘레길 대모산 입구에서 대모산을 오른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느라 숨이 무척 가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도 없는 숲 속에서 아직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 산길 양쪽에 이름 모르는 버섯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노란망태말뚝버섯에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400m쯤 걸으니 첫 번째 노란망태말뚝버섯이 .. 더보기
능소화, 북촌 한옥마을 200708 오늘은 내가 아들 일을 도와줘야 한다. 아들이 서울역사 문화역 서울284 RTO에서 있는 선정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하므로 준비물이 많고 주차가 어려워 신경을 덜 쓰도록 하기 위해 내가 운전사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새건축가협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상으로 1차 심사를 통과한 7명이 오늘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2차 공개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최종 3명을 선정한다. 최종 선정된 3명은 차세대 한국 건축을 리드할 건축가로 많은 지원을 받게 되고 활동 영역이 넓어지므로 경쟁이 치열하다. 아들은 올해 같은 주제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 받는 신진 건축가 상인 미국의 DESIGN VANGUARD 상을 비롯하여, MUSE DESIGN AWARDS, 프랑스의 PA.. 더보기
봉은사 홍매화 200316 장미과 상록활엽소교목 꽃말 : 고결,고귀,정조,결백,인내 백색,홍색,청색의 꽃이 3~4월에 핀다. 홍매화 더보기 : http://blog.daum.net/ygkgyou/866#none 만개 직전의 창덕궁 만첩홍매화 170330 작년에 처음 만난 창덕궁 홍매화는 개화시기가 조금 지난 상태여서 붉은 색이 줄어들고 일부는 꽃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올 해는 70~80% 정도 개화상태에서 만나보기로 예정하고,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예측한 3월.. blog.daum.net 더보기
조선왕조 이궁, 경희궁 200209 사적 제271호.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5대궁 중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다. 광해군이 정원군(定遠君:元宗 : 인조의 아버지)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부사(府使) 신경희(申景禧)의 말에 따라 이곳의 왕기를 제압하기 위해 1617년(광해군 9)에 수백 호의 여염집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경덕궁을 짓기 시작하여 3년 뒤인 1620년 완공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경덕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인조반정(1623)으로 등극한 인조는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그뒤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다. 현종과 숙종은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화재와 수리가 특히 많았다. 숙종은 이 궁의 정전인 회상전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 더보기
조선왕조 별궁, 덕수궁 200208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 내 궁궐이 모두 소실되어 한양으로 환도한 선조가 월산대군의 옛집을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광해군이 1611년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고 새로이 전각들을 건축하였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으뜸 궁궐로 삼았다. 으뜸 궁궐의 격에 맞는 궁궐 조성을 위해 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으나 이미 자리 잡은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과 선교사 주거지로 인해 궁역의 경계가 불규칙해졌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 예원학교와 덕수초등학교, 옛 경기여고 일대를 포함하는,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덕수궁 영역 외.. 더보기
조선왕조 이궁, 창경궁 200128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 더보기
<국내성지132> 노고산 성지 191221 노고산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이후, 사형을 당하고 그대로 형장에 내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관가의 눈을 피해 모셨던 곳 가운데 하나로, 여러 처형장과 가까워 많은 순교자들이 임시로 매장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세명의 외국인 사제, 곧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6세로 동갑이었다. 이들의 시신은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톱에 묻혔다. 그 뒤 이십 일가량 지나서 7-8명의 신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시신을 거두는 데 성공하였다. 신자들은 시신을 큰 궤에 넣어 현재 서강대학교가 자리한 노고산에 매장하였다. 4년 뒤, 시신을 훔쳐 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