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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사적지

<국내성지024>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 묘재성지 181025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려고 이사한 곳으로 남종삼 성인이 살던 곳이다. 남종삼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천주교 입교 등에서 아버지 남상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래 생부는 남원교이나 종숙부인 남상교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갔다. 남종삼은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들을 통해 서구 열강과 동맹을 맺으면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대원군은 남종삼의 상소문을 받아들였으나 주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상황이 바뀌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남종삼은 이곳에 피신하였다가 붙잡혀 순교하였다. 남상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남종삼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 뒤 체포되어 공.. 더보기
<국내성지020> 정약종 복자의 성가정 성지, 마재성지 181008 마재 성지는 거룩한 부르심의 땅이자 성가정 성지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주역들의 생활 터전이며 가족 모두가 순교하고 시복 시성의 영예를 얻게 된 정약종 일가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마재는 세속적으로는 다산 정약용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도 소중한 장소로, 교회 창립의 주역으로 천진암 강학회에 참여하였던 정씨 형제들(약현,약전,약종,약용)이 살았던 거룩한 부르심의 땅이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에 의해 조직된 '명도회'의 첫 회장을 지내고,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저술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고향이다. 그리고 정약종의 부인 유조이 체칠리아 성녀, 장남 정철상 가롤로 복자, 차남 정하상 바오로 성인, 딸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등 일가 5명이 모두 .. 더보기
<국내성지017> 도리 신부 순교비, 손골성지 170714 손골성지 순례 (2017년 7월 14일) 손골성지는 광교산 골짜기에 있는 천주교성지이다. 손골은 당초 천주교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사는 교우촌이었는데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이 교우촌에 숨어들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고 전교를 하던 유적지로 외부에 알려졌다. 손골이 성지로 개발된 데에는 성 도리 헨리코 신부와 관련이 있다. 도리 신부는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손골에서 선교활동중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는데 도리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딸몽 성당에서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그 부모가 사용하던 멧돌로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 생가에 모시고 다른 하나를 손골로 보내왔다. 이 십자가를 받은 손골에서 도리신부순교비를 세우고 그 위에 딸몽에서 보내온 돌 십자.. 더보기
<국내성지003> 첫 영세자 이승훈의 묘(반주골) 180219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그는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사신이 된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가지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천주교회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집안의 압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배교하면서 괴로워하였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마침내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 정약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