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137> 갈곡리 성당 200211
갈곡리는 칡이 많아 칡의 계곡(갈곡, 葛谷)으로 불렸고, 우리말로 칡울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칠울 공소'라 불렸다.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인근 우골에 정착하였던 신자들이 많아져, 1896년 세 가족이 칠울로 옮겨,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곳은, 하느님의 종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베네딕도회, 한국인 최초 수도 사제, 1950년 10월 5일 순교)와 그의 누이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50년 10월 17일 순교)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유서 깊은 신앙촌답게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를 비롯한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하였다. 1898년에 교구 공식 보고서에 성사 집전 기록이 보고되었고, 1908년에는 뮈텔 주교가 직접 방문하여 머문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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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125> 순교사적지, 김범우의 집터 190915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당시 이곳에 모인 신자들은 이승훈과 이벽을 비롯하여 권일신, 정약용, 최인길, 지황등이었다. 또 김범우는 집주인으로서 신자들에게 [천주실의], [칠극]과 같은 교회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가 빌려주면서 교리를 전파하였다. 1785년 봄 명례방 집회에 모인 이승훈, 이벽, 정약용, 권일신, 권철신 등이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을 '명례방 사건', 또는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라 한다. 중인(中人) 김범우는 가혹한 형벌을 받고 지방으로 도배(徒配 : 도형정배의 준말로 일정한 장소에 보내어 노역을 시킴)되어 그곳에서 고문의 여독으로 1786년 선종하였다. 현재 명례방을 알리는 표석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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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121> 순교사적지, 형조 터 190914
형조는 조선 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六曹)의 하나이다. '추관' 또는 '추조'라고도 하였으며, 사헌부, 한성부와 아울러 '삼법사'(三法司)라 부르기도 하였다. 형조는 한성부 서쪽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 시작은 정조 9년(1785년)에 발생한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신자들이 집회를 하는 중에, 금리(禁吏)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필공 토마스,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철상 가를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고, 김천애 안드레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은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1839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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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120> 순교사적지, 의금부 터 190915
의금부는 조선 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금부, 금오,왕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과 군, 현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중죄인, 곧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명령에따라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가 순교한 이래 많은 천주교 선교사와 지도층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이승훈 베드로와 주문모 야고보 신부, 최창현 요한 회장도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하였고, 성 라우렌시오 범 앵베르 주교, 성 베드로 나 모방 신부, 성 야고보 정 샤스탕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등 성직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의금부에서 혹독한 국문과 문초를 받았다. 18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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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119> 순교사적지, 우포도청 터 190914
우포도청은 조선 중종 무렵 설치되어 1894년까지 350여 년 동안 존속한 서울의 포도, 순라 기관으로 중부 서린방 혜정교 남쪽 인근(현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서울 서부, 북부와 경기우도 등을 담당하였다. 103위 성인 중 22위, 124위 복자 중 5위가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는데, 기록상 분명히 우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유대철 베드로 성인이 있으며, 병오박해 때 한이형 라우렌시오,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데레사,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가타리나가 우포도청에서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혹독한 매질 아래 순교하였다. [기해일기]를 쓴 현석문 가롤로 성인도 우포도청에서 갇혔는데, 이 때 신자들을 위로하고 순교로 나아갈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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