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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한국누정016> 한강 조망 명소, 행주산성 덕양정과 진강정 211113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 15번길 89(행주내동), 행주산성 내 촬영일자 : 2021년 11월 13일, 흐림 행주산성은 1593년(선조26)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룬 역사적 현장이다. 권율 장군의 불퇴전의 지휘로 2,300명의 정예병과 승병, 의병, 부녀자 등 3,000여명이 3만여 명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여성들까지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우면서 '행주치마'가 유래됐다. 행주산성은 한강을 낀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적 현장을 느낄 수 있는 명소이다. 덕양정과 진강정은 행주산성 내에 1970년 건립한 정자로 한강과 인근의 서울과 김포시, 고양시 등의 경치를 관망할 수 있다. 특히 진강정 아래로는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공원으로 이어지는 행주산성누리길이 연결되어 있다. 진강정 .. 더보기
<한국누정014> 효령대군 별장, 서울 망원정(望遠亭) 220309 소재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8안길 23(합정동), 망원정터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 건립시기 : 1424년(조선 세종6) 촬영일자 : 2022년 3월 9일, 맑음 망원정은 망원한강공원에서 남쪽으로 150m가량 되는 곳에 있다. 망원정(望遠亭)은 임금이 해마다 봄가을에 농사일을 살피고 수전(水戰)을 관람하기 위하여 행차했을 때 사용했던 곳으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지은 정자이다. 세종 7년(1425)에 세종이 농사 형편을 살피기 위해 왔을 때 이곳에 들렀는데, 때마침 내린 소나기로 들판이 촉촉이 젖는 것을 보고 '기쁜 비를 만난 정자' 라는 뜻의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 후 성종 형인 월산대군이 이 정자를 물려받아 '아름다운 산과 강을 잇는 경치를 멀리 바라보다.. 더보기
<한국누정013> 정조대왕 행궁, 서울 용양봉저정(龍驤鳳저亭) 220309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7 (본동)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1972. 5. 25지정) 건립시기 : 1791년( 조선 정조 15년) 촬영일자 : 2022년 3월 9일, 맑음 용양봉저정(龍驤鳳저亭)은 동작구 본동 10-30번지인 한강대교 남쪽 노량진수원지 건너편 언덕에 북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정조 13년(1789)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후에 완공한 건물로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에 참배하러 갈 때, 한강의 노들강에 배다리(舟橋)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고 점심을 드는 행궁(行宮)으로 쓰던 곳이다. '용양봉저정'이란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난다.' 라는 뜻으로 정조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건물은 정면 6.. 더보기
<한국누정012> 한강 조망 명소, 서울 효사정(孝思亭) 220309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55 (흑석동)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우수경관 조망명소 촬영일자 : 2022년 3월 9일, 맑음 효사정(孝思亭)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한강변 남쪽 언덕에 있는 정자로써, 조선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노한의 별장이었다. 노한은 모친이 돌아가시자 지금 이 자리에 정자를 짓고 3년간 시묘를 하였으며 때때로 정자에 올라 모친을 그리워하기도 하며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서 개성에 묘를 쓴 아버지를 추모했다고 한다. 효사정이라는 이름은 노한과 동서지간이었던 호조참판 강석덕이 지었으며, 넓이 46.98m2의 정면 3칸, 측면 2칸에 5량집으로 난간을 두르고 팔작지붕을 얹은 형태로써 일제 때 한강신사가 있던 자리에 1993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또한 효사정.. 더보기
<한국누정009>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石坡亭) 220224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부암동 201)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건립시기 : 조선말기 촬영일자 : 2022년 2월 24일, 맑음 석파정(石坡亭)을 세운 원주인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金興根)이다. 그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마지막 중심인물로 북악산이 훤하게 조망되고 인왕산의 계류가 아름다운 암반 위로 흐르는 이 자리에 별서(別墅 : 별장의 옛말)를 짓고 집 뒤쪽 바위에 새겨져 있던 '삼계동(三溪洞)'이라는 글자에서 이름을 따와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했다. 후일 고종이 즉위하고 1863년을 전후해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별서를 팔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행차케 하여 하룻밤 묵게 하였고, 임금이 기거한 곳에 신하가 살 .. 더보기
<한국누정008> 한양도성 명승지, 세검정(洗劍亭) 220224 정자문화가 주로 은퇴 낙향한 선비들의 후학 양성과 음풍농월의 장소이다 보니 주로 지방의 명승지에 지어졌고, 한양 도성에서는 궁궐을 제외하곤 많지 않았으며, 도성 외곽의 명승지에 지어졌던 이름 있는 정자들도 수도권 개발의 광풍에 밀려 거의 헐리고 남은 곳이 별로 없다. 북한산성 주변 명승지로 알려진 자문 밖에 세워졌던 세검정과 석파정을 찾아본다.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검정로 244(신영동 168-6)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조선후기(1977년 정자 복원) 촬영일자 : 2022년 2월24일, 맑음 세검정(洗劍亭)은 홍제천 일대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여 많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정자를 처음 지은 것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1.. 더보기
<한국누정006> 왕실 정원, 창덕궁 후원의 정자들(1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 창덕궁 후원 우리나라 정원에서 정자가 갖는 의미는 크다. 정자는 정원의 얼굴이고, 필수적이며, 정자가 있음으로 해서 정원이 완성된다. 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누각과 정자, 당, 헌 그리고 개방되지 않은 곳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몇개나 되는지 모른다. 여기서는 내가 촬영한 정자 11곳을 소개하고 정자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링크하는 "창덕궁 후원과 정자들"에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창덕궁 후원과 정자들 해설 https://blog.daum.net/ygkgyou/1507#none 더보기
<한국누정005> 왕실 정원, 창덕궁 희우루(喜雨樓) 220225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 창덕궁 내 촬영일자 : 2022년 2월 25일, 흐림 희우루(喜雨樓)는 창덕궁 성정각 동쪽에 있는 누각이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정조 1년(1777) 날이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중건하는 공사를 시작하자 비가 내렸고, 또 몇 개월 동안 가물다가 누각이 완성되어 정조가 행차하자 다시 비가 내렸다. 이에 정조는 이 누각을 희우루라 이름 지었다. 성정각은 기역자 집으로 몸체는 정면 5칸에 측면 2칸이고, 동쪽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이 붙어 있다. 이 누각이 희우루이고 몸체에는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성정각은 동궁으로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다. 동궁에는 봄 춘(春) 자가 따라붙는 경우가 많..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