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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서울특별시

<조선왕릉> 조선의 측천무후 문정왕후, 서울 태릉과 강릉(2) 201002 오늘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에 있는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을 답사하기로 한다. 태릉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고, 강릉은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이다. 문정왕후는 남편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서삼릉에서 삼성동 봉은사 근처로 옮기고 자신도 사후에 남편 곁에 묻히려 하였으나, 비가 올 때마다 정릉이 침수되어 아들 명종이 이곳에 태릉을 조성하였다. 이 후 아들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의 능 옆에 강릉이 조성되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조선왕릉 전시관이 있다. 여기서 조선왕릉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다. 조선왕릉 전시관을 우회하면 키다리 개미취의 환영인사가 있고 바로 이어서 울창한 소나무 숲이 관람객.. 더보기
<조선왕릉> 최초의 왕릉 서울 정릉(1) 201002 추석 명절 다음날 서울시내 교통이 한가한 때에 정릉동에 있는 최초의 조선왕릉 정릉을 답사하러 갔다. 내비게이션에 '정릉'을 치면 왕릉은 안 나오고 아파트 등 그런 것만 잔뜩 나와서 찾기가 어렵다. 주소(서울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또는 정릉동 산 87-16 )를 치고 가야 바로 왕릉으로 안내해 준다. 정릉 매표소 앞 도로변에 전용 주차장이 있지만 수용 대수가 많지않고 개방되어 있어서 평소에는 주차가 어렵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재실이 있다. 재실 앞에는 수령 380년이 된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고, 평소에 재실은 "태조비 신덕왕후 도서관"으로 개방하고 있고 특히 여름에는 시원해서 책 읽기에 좋다. 종합안내도이다. 재실을 나오면 앞 쪽에 정릉이 문화재청 지정 사적 제208호 임을 알리는 비석.. 더보기
<조선왕릉> 왕조의 흥망성쇄, 서울 헌릉과 인릉(2) 200918 오늘은 서울 서초구 대모산 근처에서 볼 일을 마치고 내곡동의 서울 헌릉과 인릉을 둘러본다. 헌릉은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재위 1400~1418년)의 능이고, 인릉은 제23대 임금 순조(재위 1800~1834년)의 능이다. 400년이라는 시차와 재임 중의 업적이 뚜렷이 상반되는 두 사람의 무덤이 같은 공간에 있어 그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태종은 조선왕조 건국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건국에 가장 공로가 크지만, 신권 강화를 도모하는 정도전과의 권력 쟁탈전에서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승리하여 제3대 태종으로 왕좌에 앉는다. 태종은 강력한 통치로 왕권을 튼튼하게 하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 놓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후세까.. 더보기
백일홍, 서울 양재천 200718 서울 개포동 남부혈액원 앞 양재천에 꽤 넓은 면적의 백일홍 꽃밭이 조성되어 지금 만개라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이 들락날락하지만 내일부터 며칠간 장대비가 내린다니 일단 아내와 카메라를 메고 갔다. 토요일이라서 남부혈액원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밀미리다리 위로 가서 위치 파악을 한다. 서쪽 편 양재천 약 200m 지점에 붉은 빛깔의 꽃밭이 보인다. 밀미리 다리((밀미리는 마을 이름) 아래로 내려가니 활짝 핀 참나리가 먼저 반긴다.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듯한 억새숲 길을 따라 백일홍 꽃밭으로 간다. 오래된 왕버들 바람벽 아래 길게 조성된 꽃밭에 활짝 핀 백일홍이 한가득이다. 여긴 유독 노란색 백일홍꽃이 많다. 꽃밭에 꿀따러 온 나비와 벌들이 와글와글한다. 꽃들도 지금 한창 피어나고 있어.. 더보기
봉은사 홍매화 200316 장미과 상록활엽소교목 꽃말 : 고결,고귀,정조,결백,인내 백색,홍색,청색의 꽃이 3~4월에 핀다. 홍매화 더보기 : http://blog.daum.net/ygkgyou/866#none 만개 직전의 창덕궁 만첩홍매화 170330 작년에 처음 만난 창덕궁 홍매화는 개화시기가 조금 지난 상태여서 붉은 색이 줄어들고 일부는 꽃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올 해는 70~80% 정도 개화상태에서 만나보기로 예정하고,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예측한 3월.. blog.daum.net 더보기
조선왕조 이궁, 경희궁 200209 사적 제271호.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5대궁 중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다. 광해군이 정원군(定遠君:元宗 : 인조의 아버지)의 집 근처인 색문동(塞門洞)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부사(府使) 신경희(申景禧)의 말에 따라 이곳의 왕기를 제압하기 위해 1617년(광해군 9)에 수백 호의 여염집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경덕궁을 짓기 시작하여 3년 뒤인 1620년 완공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경덕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인조반정(1623)으로 등극한 인조는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그뒤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다. 현종과 숙종은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화재와 수리가 특히 많았다. 숙종은 이 궁의 정전인 회상전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 더보기
조선왕조 별궁, 덕수궁 200208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 내 궁궐이 모두 소실되어 한양으로 환도한 선조가 월산대군의 옛집을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광해군이 1611년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고 새로이 전각들을 건축하였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으뜸 궁궐로 삼았다. 으뜸 궁궐의 격에 맞는 궁궐 조성을 위해 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으나 이미 자리 잡은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과 선교사 주거지로 인해 궁역의 경계가 불규칙해졌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 예원학교와 덕수초등학교, 옛 경기여고 일대를 포함하는,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덕수궁 영역 외.. 더보기
조선왕조 이궁, 창경궁 200128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