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원도

<국내성지150> 성내동 성당 200813 성내동 성당(옛 삼척 성당)은 1949년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성당은 1957년 삼척 시내를 굽어보는 동산 위에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성내동 성당은, 여느 성당들과 달리 뒤쪽으로 들어와서 성당을 돌아야 종탑이 있는 정면 출입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종탑이 성당 입구가 아닌 시내 쪽을 바라보게 하여, 멀리서도 사람들이 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초대 주임 신부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진 야고보 신부(James Maggin, 1911-1950년)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1936년 한국에 와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투옥과 연금을 당했고, 해방 뒤에는 .. 더보기
<국내성지149>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 터 200813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는 194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1947년 입국,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이 배를 마련하여 피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라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는 공산군이 쳐들어오자 당시 전교 회장의 집 뒷방으로 피신하여 몰래 미사를 봉헌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던 중 라 신부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며 끌려갔다.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묵호에서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공산군에 의해 밤재굴에서 총살당하였다. 라 신부의 유해는 1951년 10월 11일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이후 묵호 성당 신.. 더보기
<국내성지148> 묵호 성당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200813 1940년 강릉 임당동 본당의 관할 공소로 설정되어 시작된 묵호 성당은 해방 뒤에 묵호 해군 사령부의 군종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 하였다. 이곳은 1948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지만 아직 성전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 주임인 한 프란치스코 신부는 묵호항 부근의 일본식 가옥에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이듬해인 1949년 4월 라 파트리치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한국 전쟁 중 공산군이 성당을 점령하자 당시 전교 회장의 집에 잠시 피신했지만 결국 체포되어 강릉으로 이송 도중 밤재 굴에서 순교하였다. 이후 전쟁으로 본당에 사제가 파견되지 못하였다. 교우들은 양들을 두고 피신할 수 없었던 착한 목자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본당 마당에 순교비를 세웠으며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 더보기
<국내성지147> 행정 공소(옹기 마을 신앙촌) 200813 행정 공소는 본디 외교인촌이었으나, 1924년경에 옹기점 마을 회장이었던 김세중 라파엘이 일가를 데리고 양평에서 이주하여 옹기점 교우 마을(점촌)을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공소 회장을 맡으며 전교에 힘썼고, 한때는 마을의 50세대 전체가 옹기를 굽는 교우들이었다. 박해 시대 이래 교우들은 오지그릇이나 숯을 구우며 숨어 살았는데, 행정 공소는 그러한 우리 교회사를 상징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행정 공소는 금광리, 도문, 학야, 산두 공소와 더불어 영동 지역의 주요 공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 공소는 처음에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958년 신자들이 힘을 모아 옹기를 굽는 가마에서 흙벽돌을 구워 공소 건물을 지었으며, 신자들의 열심한 전교 활동으로 삼산 공소(1958년)와 .. 더보기
<국내성지146> 임당동 성당 (순교자 심능석 스테파노, 이유일 안토니오) 200814 1866년 박해 이후로 신자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영동 지방까지 피신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토기 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1868년 강릉 굴아위에 살던 심능석 스테파노와 이유일 안토니오가 경포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심 스테파노는 자신을 찾는 경포에게 떳떳이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붙잡혔다. 심 스테파노와 이 안토니오는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시복을 추진하고 있으며 춘천교구 교우들은 매 미사 때마다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임당동 성당은 1921년 7월 양양 본당 보좌 신부였던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가 금광리 교우촌에 머물면서 사 목 한 데서 시작되어, 1923년 주문진, 1931년 강릉읍으로 본당을 옮겼다가 193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더보기
관동팔경 6경, 삼척 죽서루 200813 삼척 죽서루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관동팔경 중에서 여섯 번째이다. 현재 삼척시 성내동 오십천 절벽 위에 위치한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竹西樓)는 누각이다. 누각이란 일반적으로 기둥이 층 받침이 되어 마루가 높이 된 중층의 다락집을 말한다. 죽서루는 조선시대 관아시설로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지방에 파견된 중앙 관리들이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접대와 향연을 위한 장소, 삼척 지방 양반 사대부와 삼척을 찾아오는 시인 묵객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건물 자체의 역사나 웅장함 뿐만 아니라 주위의 뛰어난 경관으로 인하여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시인 묵객들의 사랑과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죽서루'와 '관동 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36년(1710년)에 삼척부사 이.. 더보기
강릉여행, 관동팔경 5경, 강릉 경포대 200814 강릉 경포대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관동팔경 중에서 다섯 번째이다. 첫 번째가 통천의 총석정, 두 번째가 고성의 청간정, 세 번째가 양양의 낙산사, 네 번째가 고성의 삼일포이다. 그다음 다섯 번째가 강릉 경포대이고, 여섯 번째가 삼척의 죽서루, 일곱 번째가 울진의 망양정, 여덟 번째가 울진의 월송정이다. 문화재 지정 보물 제2046호로, 1326년(고려 충숙왕 13)에 관동존무사(關東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재의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는데, 1508년(중종 3) 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건한 후 현재까지 7차에 걸쳐 중수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조선 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세운 것으로서, 낡은 건물은 헐어내고 홍수로 인하여 사천면 진리 앞바다에 떠내려.. 더보기
강릉여행, 새콤 달콤 매콤, 사천진리물회 200814 오죽헌과 선교장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한 시가 넘었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리고 나니 시장기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사전에 검색해둔대로 사천면 진리 해변길의 물회 마을로 갔다. 사천 진리 물회마을은 경포 해변 바로 옆의 해변 마을로 지역 특산물인 물회를 개발하여 20여 개 횟집이 모여 영업한다. 또 해변 길을 따라 커피 전문점들도 한데 모여 커피 거리를 이루고 있다고 인터넷을 통하여 알려져 있다. 선교장에서 15분 정도를 가니 사천 해변이 나오고 공영주차장에 여유롭게 파킹을 했다. 마을 중심부 큰길 양쪽으로 전부 물회 집이다. 아직은 바캉스 시즌인데 물회 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없고 거꾸로 물회 집이 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검색해 둔 대로 사천물회전문집을 쉽게 찾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