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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사적지

<국내성지043> 서천지역 신앙선조들의 교우촌, 산막골(작은재) 181214 천방산 자락의 산막골은 서천지역 신앙 선조들의 교우촌들 가운데 하나이다. 1839년 기해박해 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곳이다. 서천지역 순교자들 가운데 기록이 남아 있는 순교자들은 57명에 이른다. 여러 교우촌 가운데 산막골이 가장 컸다. 산막골은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페롱 신부가 1858년부터 거주하며 사목 활동을 한 곳이다. 그가 1858~1865년까지 보낸 서한들 가운데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6통 남아 있고, 조안노 신부가 1862년 11월 4일에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1통 전해진다. 또한 산막골은 황석두 루카 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하여 병인박해 전까지 10여 년 동안 살던 곳이다. 이와 함께 천방산 기슭 광장(고갯마루,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 더보기
<국내성지042> 성모 신심이 시작된 곳, 수리치골성모성지 181213 수리치골은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으로 '성모 성심회'라는 신심 단체가 조직된 뜻 깊은 장소이다.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이 시작된 곳이며, 공주 지방의 신앙 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교우촌이다. 중국 상해에서 첫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0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신자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였다. 1846년 뜻밖에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수리치골로 피신하였다. 그해 11월 2일 두 선교사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조선 교회가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다. 성모 성심회는 수리치골의 한 오두막집에서 몇 명의 신자들로 시작한 작은 단체였다. 하지만 .. 더보기
<국내성지039> 조화서,조윤호 부자 성인의 교우촌, 신창 남방제 181212 남방제는 박해 시대의 교우촌이며, 조윤호 요셉 성인이 태어난 곳이고 조화서 베드로 성인과 여러 순교자들이 사셨던 곳이다. 조윤호의 가문은 구교우 집안으로 본디 경기도 수원 도마지에 살았다. 할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순교하고, 할머니 권 율리아나가 선종하자 아버지 조화서는 남방제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한 막달레나와 결혼하여 1848년 조윤호를 낳았다. 조화서는 1850년 경부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복사로서 전국 각처에 숨어 있는 교우들을 순방하는 길에 함께 하였다. 조윤호는 1865년에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전주 성지동으로 이사한 뒤 이듬해 이 루치아와 혼인하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1866년 12월 5일 밤 포졸들이 급습하여 조윤호와 아버지 조화서를 체포하였다. 이들은 전주.. 더보기
<국내성지036> 김대건 신부 성장지 및 사목지, 은이.골배마실 181204 은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요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사제성소의 열매를 맺은 곳이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 활동은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순교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곧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산 너머 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 서품후 사목 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골배마실'은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지네가 많아 '뱀 마을(배마실)'이라고 불려 왔다. 김대건(7세)의 조부 택현과 가족들은 1827년경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용인.. 더보기
<국내성지035> 성 남종삼 요한 묘 181201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율대리 서울대교구 길음동 성당 묘원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 요한 성인과 공주에서 순교한 성인의 부친 남상교, 전주로 유배되어 순교한 장자 남규희 등 삼대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남종삼 성인은 '승지'로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분이다. 1863년 말경, 러시아가 수시로 우리나라를 침범하며 통상을 요구하던 차에 남종삼은 '이이제이방아책(以夷制夷防俄策)'이라 하여 서양 프랑스의 세력을 이용해 러시아를 물리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원군은 주교와 만나려 했으나 만남이 늦어지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며 1866년 2월 천주교를 탄압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남종삼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50세로 순교하였다. 남종삼의 시신은 용산 왜고개에 매장되었다가 .. 더보기
<국내성지034> 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 묘 181201 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었으며, 16세의 어린 나이로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천주교의 오묘한 진리에 깊이 매료되어 입교하였고, 그 후 활짝 열려 있던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고난과 박해만이 기다리는 신앙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다 마침내 1801년에 순교하였다.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를 갔고, 외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남겨져 선종하였다.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상황과 대비책을 적어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고 준비했던 '백서'는 젊은 학자의 용기있는 표현이며, 귀중한 교회사적 자료이다. 황사영의 세례명은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와 달레의 한국 교회사에서 '알렉산델'로 알려졌으나 1990년대 교회사 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알렉시오'임이 밝혀졌다. 황사영.. 더보기
<국내성지033> 병인박해 5인 순교지, 양주순교성지 181201 경기도 북부 지역에 위치한 의정부교구의 순교성지는 치명일기의 기록을 보면 병인박해(1866~1873년) 때 3곳, 송도, 장단, 양주 관아가 있다. 송도와 장단은 갈 수 없는 곳이고, 양주 관아만이 현재 갈 수 있는 곳이다. 양주에서는 다섯 분이 순교하셨는데, 1866년 순교한 김윤오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남편은 김대건 부제와 중국으로 가서 선종), 박서방, 그리고 1868년 순교한 홍성원 아오스딩 등이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지난 2008년 "경기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 심포지엄을 통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양주의 정확한 순교지를 찾았고, 성지터를 확보하여 2016년 5월 28일 교구장 이기헌 주교님의 집전으로 순교성지 선포식을 가졌다. 현재 성지 개발 중이며 담당 사제가 .. 더보기
<국내성지027> 한국 네번째 강원도 첫번째 성당, 풍수원성당 181107 1888년 6월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풍수원 성당은 1910년에 봉헌식을 가졌으며, 한국인 신부(정규하 아우구스티노)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으로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자재를 스스로 조달하여 세웠다. 성전은 1982년에 강원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구 사제관은 2005년에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풍수원 일대는 오래된 교우촌으로 그 시작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때, 박해를 피해 피난처를 찾던 신태보 베드로가 신자 40여 명과 함께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한 것에 기인한다. 이 후 박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교우들이 모여 큰 촌락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이어 왔으며, 80여 년간 목자 없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오다가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