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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지

<국내성지115> 중림동 약현 성당 190908 중림동 약현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성당이며, 한국 천주교회를 태동시키고 이끌어온 순교 성인들 가운데 44명의 성인이 탄생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 주변에 세워진 성지 순례 기념 성당이다. 성당 근처에 이승훈 베드로의 집이 있었고, 신유.기해.병인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므로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1991년 김수환 추기경이 주례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 축복식에서 약현 성당이 서소문 성지 순례 기념 성당임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를 통해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는 새로운 관심과 기대 속에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중림동 약현 성당은 순교자들을 더욱 현양할 수 있는.. 더보기
<국내성지099>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곳, 성모당 190405 성모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위치한, 대구대교구의 제1주보이신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곳이다. 성모 동굴과 크기와 바위 모양까지 똑같고, 둘러싼 벽돌당은 레오 13세 교황이 로마에 지은 루르드 동굴의 벽돌당과 같다. 1911년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된 드망즈 주교가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이 이루어진다면 대구가 가장 잘 바라다보이는 곳에 성모 동굴을 짓기로 허원했다. 그리하여 드망즈 주교가 직접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드린 서약에 의해) 1918"이라는 글을 새긴 성모당이 완공되어 1918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다. 1973년 5월부터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개최하면서 유명해졌고, 교구의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더보기
<국내성지082>칠극의 수계생활 홍유한, 우곡성지 190227 우곡 성지는 한국 최초의 수덕자로서 [칠극]의 가르침을 따라 천주교 수계 생활을 28년 동안 이어 온 농은 홍유한(1726~1785년) 선생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농은 선생은 명문가 풍산 홍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6세 때부터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1750년경부터 성호 이익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깨달은 바가 남달리 커서 1757년경에는 서울의 살림을 정리하고 충청남도 예산으로 내려가서 [칠극]에 따라 18년 동안 혼자 천주교 수계 생활을 하였다. 1775년에는 경상도 땅 순흥고을 구고리로 와서 10년 동안 수계 생활을 더욱 철저.. 더보기
<국내성지081> 한국 천주교 최초 수덕자, 홍유한 고택지 190227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것이 1784년, 이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심신을 연마한 이가 바로 농은 홍유한이다. 비록 그가 물로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천주교를 단순히 신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종교적 요소를 가지고 대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첫 인물로 꼽힌다. 경북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옛지명: 구고리)는 바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천주학을 처음 접한 뒤 바로 이곳에서 1775년부터 10년간 학문을 통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실천했다. 그는 유교와 불교에서 발견하지 못한 천주교의 진리를 깨달은 후부터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칠극]에서 터득한 덕행을 쌓기 위해 7일마다 하루를 주일로 정해 세속.. 더보기
<국내성지077> 돌에 새긴 신심, 신앙고백비 190226 오늘은 안동교구 산하 6개 성지를 순례하러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떠난다. 상주, 문경 지역의 4개 성지를 둘러본 후 수안보 한화리조트에서 1박하고, 다음날 영주, 봉화 2곳을 순례하고 귀가하는 코스이다. 이번 순례 일정에도 이재현 요셉 부부가 동행한다. 신앙고백비는 1866년 병인박해 전의 신자인 김삼록 도미니코(1843~1935년)가 자기의 신앙 고백에 관한 내용을 비석에 새겨 그의 집 뒷산 바위 위에 세운 것이다. 신앙고백비가 서 있는 상주시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게 되었다. 김해 김씨 집안의 4형제 중 둘째였던 김삼록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1886년 한불 수호 조약 이후에 공식적인 박해가 끝나고 자유가 허용될 무렵인 1894.. 더보기
<국내성지064> 살 수 있는 터, 살티 신앙 사적지 190210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에서 12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살티는 언양 성당, 시외버스 터미널, 석남사를 지나 1km 쯤 더 간 곳에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41m)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으로도 불리었다. 살티 공소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거치면서 간월, 죽림굴로 숨어들었던 신자들이 경상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행해진 경신박해(1860년)와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 더욱 안전한 곳을 찾다가 모여든 곳이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이다.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포졸들이 신자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 경주로 빠져 나감으로써 이곳의 신자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 더보기
<국내성지063> 언양 성당 신앙 사적지 190210 오늘부터 부산교구 성지 8곳과 마산교구 성지 6곳을 둘러보기 위하여 5박 6일간의 성지순례 여행을 떠난다. 부산지역은 해운대에 있는 한화리조트 해운대 티볼리, 마산지역은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에 캠프를 차리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역시 제주도 순례에 동행을 했던 이재현 요셉 부부가 이번에도 동행을 하고 요셉의 차로 네사람이 출발했다. 부산을 향하여 가는 길에 언양에 언양 성당, 살티 공소, 죽림굴의 세 곳의 성지가 몰려 있어서 먼저 들리기로 했다. 세 곳중 죽림굴은 산중에 있어 지세도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듯하여 돌아오는 길에 가고 대신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를 보기로 수정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IC에서 내려 언양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언양 성당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각 공소 대표자.. 더보기
<국내성지060> 세계최대 복음테마공원, 새미 은총의 동산 190130 1950년대 후반에 성 골룸반 외방 선교회 소속 사제 패트릭 맥글린치(임피제) 신부는 한림 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면서, 그당시 가난한 제주 농민들을 돕기 위하여 외국의 원조를 얻어 한림읍 금악리에 넓은 목장을 확보하고 성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특히 축산업을 발전시켜 제주도뿐 아니라 한국의 목축업에 많은 기여를 했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여러가지 종교사업과 사회사업을 펼쳤다. 이 장소의 옛 이름을 딴 '새미' (SAEMI) 은총의 동산은 라틴어에서 거룩함, 영혼, 복음, 중개자, 하느님의 모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테마들과 십자가의 길 14처를 동상으로 제작하여 세워놓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음 테마 공원이 있다. 또한 이곳 성 이시돌 센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