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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성지

<국내성지132> 노고산 성지 191221 노고산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이후, 사형을 당하고 그대로 형장에 내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관가의 눈을 피해 모셨던 곳 가운데 하나로, 여러 처형장과 가까워 많은 순교자들이 임시로 매장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세명의 외국인 사제, 곧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6세로 동갑이었다. 이들의 시신은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톱에 묻혔다. 그 뒤 이십 일가량 지나서 7-8명의 신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시신을 거두는 데 성공하였다. 신자들은 시신을 큰 궤에 넣어 현재 서강대학교가 자리한 노고산에 매장하였다. 4년 뒤, 시신을 훔쳐 낸.. 더보기
<국내성지130> 답동 주교좌성당 191128 답동 성당은 인천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주보성인은 바오로 성인이다. 1888년부터 개항지인 제물포 지역에서 조선교구가 성당 대지를 물색하면서 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지 매입을 결정한 파리 외방전교회는 빌렘 신부(한국명 홍석구)를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하고 1889년 7월 1일 제물포 본당(현 답동 성당)을 설립하였다. 1893년 3대 주임 마라발 신부(서요셉, 1893-1904년)가 본격적으로 성당 건립을 시작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895년 정초식을 하여 이듬해 종탑이 완공되었다. 1897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1890-1933년)가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성당 건물은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933년 신자 수가 1,500여 명에 이.. 더보기
<국내성지129> 순교사적지, 멍에목성지 191116 보은의 멍에목 성지는 천주교 박해기에 신앙 선조들이 일군 교우촌에서 시작되었다. 1827년의 정해박해 때는 박경화 바오로 복자와 박사의 안드레아 복자 부자가 이곳에서 체포되어 상주 진영을 거쳐 대구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 바오로는 대구에서 옥사로 순교하였고, 아들 안드레아는 오랫동안의 옥살이를 겪은 뒤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천상의 영광을 얻었다. 1868년 울산 장대에서 순교한 김종륜 루카 복자도 한때 멍에목 교우촌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또 1868년에는 멍에목 공소 최용운 암브로시오 회장과 5명의 교우가 청주 진영에서 순교하였고, 청주 금봉에 살던 그의 손아래 처남 전 야고보도 1867년에 청주에서 순교하였다. 암브로시오 회장과 야고보는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 더보기
<국내성지128> 서운동 순교성지 성당 191117 서운동 성당은 1933년 6월 청주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6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였다. 관할 구역 안에 4곳의 순교지와 1곳의 신앙 증거 터가 있어, 2019년에 순교 성지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청주 진영 순교지는 충청도의 5개 진영 가운데 하나로 병인박해 때 진천 지장골에서 체포된 오반지 바오로 복자가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청주 남문 밖 장터 순교지는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보은 멍에목에서 체포된 김사진 프란치스코 복자가 압송되어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충청 병영 순교지는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자리이며,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순교자들의 순교지요 신앙 증거 터이다. 이곳에서 원시보 야고보(.. 더보기
<국내성지127>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터 190914 광화문 광장은 조선 시대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가까운 곳이다. 2014년 8월 16일, 한국 천주교회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 되었다. 보통 시복 미사는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교황을 대리하여 거행하는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의 땅 한국에 와서 직접 시복 미사를 집전하였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열린 시복식이었다. 2015년 8월, 124위 복자 시복 1주년을 기념하여 표석(바닥 돌)을 설치하였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8월 23일 오전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조규만, 정순택, 손희송.. 더보기
<국내성지126>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 190915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 대회와 103위 순교 복자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101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전 교회에서 그들을 경건히 공경해야 함을 선포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역사적인 시성 선언으로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더욱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103명의 복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빛을 부여 하였다. 100년이 넘도록 계속된 박해 중에 만여 명이 순교하였지만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이들 가운데 1925년에 79위, 1968년 2.. 더보기
<국내성지125> 순교사적지, 김범우의 집터 190915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당시 이곳에 모인 신자들은 이승훈과 이벽을 비롯하여 권일신, 정약용, 최인길, 지황등이었다. 또 김범우는 집주인으로서 신자들에게 [천주실의], [칠극]과 같은 교회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가 빌려주면서 교리를 전파하였다. 1785년 봄 명례방 집회에 모인 이승훈, 이벽, 정약용, 권일신, 권철신 등이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을 '명례방 사건', 또는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라 한다. 중인(中人) 김범우는 가혹한 형벌을 받고 지방으로 도배(徒配 : 도형정배의 준말로 일정한 장소에 보내어 노역을 시킴)되어 그곳에서 고문의 여독으로 1786년 선종하였다. 현재 명례방을 알리는 표석은 없.. 더보기
<국내성지124> 순교사적지, 이벽의 집터 190915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은 북경 북당(北堂)에서 예수회 선교사 그라몽 신부에게 1784년 2월경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그해 음력 9월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요한 세례자)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정약용(요한) 등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벽은 다시 최창현(요한), 최인길(마티아), 김종교(프란치스코) 등에게 세례를 베풀어 신자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 교회는 세례를 통하여 결속된 복음 선포 기능을 수행하는 신앙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신앙 공동체가 출발하게 되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2011년 8월 28일 현 두레시닝 빌딩 앞에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기념 표석을 세우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