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천주교 성지

<국내성지123> 포도청 순례지 성당, 종로성당 190915 종로 성당은 서울의 중요한 순교터이자 최대의 신앙 증언 터였던 좌.우포도청과 의금부, 형조, 전옥서 등의 관아들이 있던 곳을 관할하기 때문에 2013년 2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하였다. 좌.우포도청에서 103위 성인 가운데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를 포함한 22명의 성인이, 전옥서에서 이호영 베드로와 김 바르바라 등 2명의 성인이 순교하였다. 포도청에서는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가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124위 복자 가운데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 최인길 마티아를 포함한 5명의 복자가 순교하였다. 또한 포도청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마지막으로 신앙을 증언하고 밤을 보낸 곳이기도 하였다. 성당 내에는.. 더보기
<국내성지122> 순교사적지, 전옥서 터 190915 전옥서는 형조 아래에서 감옥과 죄수를 관리하던 관서였다. 박해 시기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구금되었다. 103위 성인 가운데 전옥서에서 순교한 성인은 이호영 베드로와 김 바르바라이다. 이호영 베드로 성인은 이소사 아가타 성녀의 동생으로, 1835년 이소사와 함께 체포되어 1839년까지 4년 동안 혹독한 옥살이로 얻은 병으로 순교하였다. 김 바르바라 성녀도 포도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고, 전옥서에서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도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처형될 때까지 전옥서에 구금되었다. 형조 아래의 감옥인 전옥서는 1785년 명례방.. 더보기
<국내성지121> 순교사적지, 형조 터 190914 형조는 조선 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六曹)의 하나이다. '추관' 또는 '추조'라고도 하였으며, 사헌부, 한성부와 아울러 '삼법사'(三法司)라 부르기도 하였다. 형조는 한성부 서쪽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 시작은 정조 9년(1785년)에 발생한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신자들이 집회를 하는 중에, 금리(禁吏)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필공 토마스,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철상 가를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고, 김천애 안드레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은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1839년 기.. 더보기
<국내성지120> 순교사적지, 의금부 터 190915 의금부는 조선 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금부, 금오,왕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과 군, 현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중죄인, 곧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명령에따라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가 순교한 이래 많은 천주교 선교사와 지도층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이승훈 베드로와 주문모 야고보 신부, 최창현 요한 회장도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하였고, 성 라우렌시오 범 앵베르 주교, 성 베드로 나 모방 신부, 성 야고보 정 샤스탕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등 성직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의금부에서 혹독한 국문과 문초를 받았다. 1866년 .. 더보기
<국내성지119> 순교사적지, 우포도청 터 190914 우포도청은 조선 중종 무렵 설치되어 1894년까지 350여 년 동안 존속한 서울의 포도, 순라 기관으로 중부 서린방 혜정교 남쪽 인근(현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서울 서부, 북부와 경기우도 등을 담당하였다. 103위 성인 중 22위, 124위 복자 중 5위가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는데, 기록상 분명히 우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유대철 베드로 성인이 있으며, 병오박해 때 한이형 라우렌시오,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데레사,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가타리나가 우포도청에서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혹독한 매질 아래 순교하였다. [기해일기]를 쓴 현석문 가롤로 성인도 우포도청에서 갇혔는데, 이 때 신자들을 위로하고 순교로 나아갈 수 .. 더보기
<국내성지118> 순교사적지, 좌포도청 터 190915 좌포도청은 한성부 정선방 파자교 동북쪽(현 종로구 단성사 일대)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 서울 동.남.중부와 경기좌도를 관할하였으며, 중종 무렵 설치되어 고종 31년(1894년) 7월 경무청으로 개편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포도청에서 천주교 박해에 개입한 것은 1795년 북산 사건으로 발생한 을묘박해 때가 최초였다. 박해시기 수많은 신자들이 좌.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으나 기록상 좌.우포도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103위 성인 가운데 22명, 124위 복자 가운데 5명이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기록상 명확하게 좌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민극가 스테파노, 허임 바오로, 남경문 베드로, 임치백 요셉 성인이 있다. 복자 가운데에는 1795년 을묘박해 때 윤유일 .. 더보기
<국내성지117> 순교사적지, 경기감영 터 190914 박해로 숨어서 천주를 믿어야 했음에도, 점점 확산되어 가던 경기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큰 타격을 입었다. 잡혀 온 경기 지역의 신자들은 한성 서대문 밖 반송방에 위치한 경기 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특히 가난하고 몸이 부실하며 배움도 부족했던 조용삼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에게 신앙을 배우며 따르다가 체포되어 11개월 동안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았다. 1801년 2월에 다시 감사 앞으로 끌려 나가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형벌을 받았는데, 약해진 몸은 더 이상의 형벌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옥에 갇힌지 며칠 지난 3월 27일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마지막 형벌 때에 박해자들을 향해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 더보기
<국내성지116> 첫미사 기념성당, 가회동 성당 190914 가회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794년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한국 땅에서) 첫미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주문모 신부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북촌에 있던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머물면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며 사목 활동을 하였다. 가회동은 주문모 신부의 사목 활동 거점으로서 한국 초기 교회의 신앙 중심지였다. 1955년 8월 9일, 병인박해를 일으켰던 흥선 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가회동 성당의 관할 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임종 1주일 전에 세례 받기를 원하여, 당시 보좌 신부였던 박병윤 신부에게 '비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기의 선조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