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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국내성지092> 6성인12복자 순교지, 전주 숲정이 190320 숲정이 성지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정이' 또는 '숲머리'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다. 숲정이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유혈이 있었는데 순교자 중에서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1839년에 참수된 복자 신태보 베드로, 이태권 베드로, 이일언 욥, 정태봉 바오로, 김대권 베드로 등 5명이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리에 살던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손선지 베드로, 정원지 베드로 등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67년에는 김사집 필립보를 비롯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치명하였다. 198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 71호로 지정된 숲정이는 여러 현세적인 이유와 도시 개발에 밀려 본디 위.. 더보기
<국내성지091> 수장터, 초록바위 190320 초록바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의 14세 된 아들 명희와 순교자 홍봉주 토마스의 아들이 수장된 곳이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이 두 아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당시의 관례대로 전주 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 넣어 죽였다. 병인박해 때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된 남종삼 성인은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백, 전장운과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과 함께 문초를 당하고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된다.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와 장자인 남규희, 처 이소사는 바로 순교했으나 당시 14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갔던 명희는 전주 감옥에 수감된 뒤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 1.. 더보기
<국내성지090> 성 조윤호 요셉 순교터, 서천교 190320 이곳은 성 조윤호 요셉이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부친인 조화서는 일찍이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최 신부의 전교와 성무 활동을 보필했고 그 후 전주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주했다.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된 이들 부자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강요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로 다짐했다. 옥에서 아버지는 아들 윤호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며 죽음의 두려움보다는 배교의 유혹에 .. 더보기
<국내성지089> 성문 앞에서 참수형, 풍남문 190320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요 복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이다. 윤지충은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서학을 접한다. 얼마 후 정약용 형제들의 지도로 열렬한 신자가 되고 다시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에게 전교한다.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서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와 상의,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 의식인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는데 이를 '진산 사건'이라 한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12월 8일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윤지충이 전라 관.. 더보기
<국내성지088> 한국 최초 순교터, 전동성당 190320 전동 성당을 세운 보두네 신부도 처음에는 이곳이 순교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성당을 세웠지만,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처음에는 전주 오목대에 성당을 세울 계획을 세웠는데, 유림들과의 마찰을 우려한 뮈텔 주교가 옮길 것을 건의해서 지금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과 김유산 등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아우 유관검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 와 달라고 요청한 '대박청래' 사건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곳이다. 전.. 더보기
<국내성지087> 목숨을 바친 자들의 산, 치명자산 190318 이곳은 예로부터 승암산 또는 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1801년에 순교한 복자 유항검의 가족들을 합장한 뒤, 치명자산 또는 동정 부부 이 루갈다를 추앙하여 루갈다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는1784년 세례를 받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처 신희, 동정 부부로 순교한 큰아들 유중철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 일곱 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유항검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해 능지 처참형을 받고 전주 감영으로 다시 이동, 1801년에 46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선인들이 해발 300m의 산정에 님.. 더보기
<국내성지086>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생가터, 초남이 190318 초남이는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의 생가터가 자리한 곳이다. 1754년 초남리에서 태어난 유항검은 1784년 늦은 가을 세례를 받고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10월에 참수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이 때문에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동정 부부이자 유항검의 아들 며느리인 유중철과 이순이, 둘째 아들 유문석 그리고 조카 유중성이 순교하였고, 이분들의 무덤은 전주 '치명자산'에 합장되어 모셔져 있다. 유항검의 처와 제수를 제외한 5명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절차에 따라 시복되었다. 유.. 더보기
<국내성지085> 김대건 신부 착지처, 나바위 190318 오늘부터 4박 5일간 호남지역의 전주교구와 광주대교구 산하 성지를 순례하러 떠난다. 전주의 한옥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전주교구의 11개 성지와 광주대교구의 4개 성지를 둘러보는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이다. 그동안 동행을 해왔던 이재현 요셉 부부가 동행하지 못하고, 30년도 넘게 이웃 사촌인 김윤환 안토니오 부부가 동행한다. 아침 일찍 미금역에서 합류한 네 사람이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익산의 나바위 성지로 향한다. 나바위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이다. 1845년 10월 12일 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이곳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로서는 그해 1월 육로로 한 번 입국한 데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 더보기